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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안전하지 못한 사회가 잘못입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추모 안산시민촛불(2022.11.4) 발언 - 윤유진 안산청년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뉴스99 기자 |

 

이태원참사 희생자 추모 안산시민촛불(2022.11.4) 발언

- 윤유진 안산청년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문득,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생각하곤 합니다.
지금 제가 직장을 다니는 게 아니라 학교를 다녔다면 저는 그 할로윈데이 축제에 갔을 것입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저는 살아남았을까요.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당신은 무사했을까요.
비단 이태원 거리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그 어디도 안전한 곳은 없다고 느낍니다.


그러게 거길 왜 갔냐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아 주세요.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 되었을 때 우리는 피해자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번 참사에서는 유독, 피해자 탓을 하는 걸까요.


희생자들과 자신이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고 위험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피해자를 욕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자기가 했던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재난 참사를 일으킨 정부와 시스템의 무능 대신에, 재난의 현장에 우연히 있게 된 희생자들을 탓하지 말아 주세요.
안전하지 못한 사회가 잘못입니다.
위험을 예방하고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정부와 사회의 탓입니다.

구조적 문제를 똑바로 보지 않고, 나와는 상관없는 남들의 이야기로 치부해서 나는 안전하다는 거짓 위안을 삼으려 할 때, 손쉽게 ‘거기에 갔던 그 사람들’의 잘못으로 치부할 때, 우리는 같은 비극을 막을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이태원 참사의 현장을 보면서 세월호 참사가 겹쳐보였습니다.

참사 4시간 전부터 시민들은 압사 사고 위험을 신고했습니다.
시민들은 탈진한 이에게 물을 건네주고... 쓰러진 사람에게 cpr을 하고,  스스로를 구조했습니다. 
시민들은, 개인들은,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습니다.

 

 

이렇게 시민들이 서로를 구할 때, 정부는 무엇을 했나요. 
대체 정부는, 책임자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요?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국가와 정부 아닌가요.

뉴스에서 속속 드러나는 사실들을 보면 정신이 아득합니다.


경찰과 용산구는 이태원에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전대책을 전혀 세우지 않았습니다. 10만 명의 생명과 안전을 단 20-30명의 경찰에게 맡겼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이, 경찰이 와줄 것으로 믿고 수십 통의 신고전화를 할 때 경찰은 출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경찰과 행정부의 책임자는 구조를 지휘하긴 커녕 참사가 일어난 사실도 가장 늦게 전달받았습니다.

이렇게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겹겹이 층층이 실패해 엄청난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대통령은 사과도 하지 않고 ‘애도만 하라’고 합니다. 총리와 장관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합니다. 

 

시민들은 서로를 구하고도, 더 구하지 못해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다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도 모자라 정부는 ‘참사’라는 말 대신 ‘사고’라고 하고, ‘희생자’ ‘피해자’ 대신 ‘사망자’라고 쓰라고 합니다.

이태원참사가 어떻게 단순한 사고입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거리에 선 채로.. 백 명도 넘는 사람들의 목숨이 끊어지는 일이.. 어떻게 그냥 사고입니까.
정부가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일이 어떻게 그냥 사고입니까.

 

참사를 그저 ‘우연한 사고’로 포장하면서  자기한테 돌아갈 책임소지만 면하려는 대통령과 관료들의 태도에 분노가 치솟습니다.
세월호참사 때 보았던 장면이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씨랜드참사 이후, 세월호참사 이후, 달라질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번 참사를 마지막으로 반드시 달라져야 합니다.
참사 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부는 책임을 묻는 시민들을 통제하고 목소리를 차단하려 할 생각 하지 말고, 정부가 책임지고 참사의 원인과 과정을 조사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는 희생자를 탓하는 대신 제대로 된 안전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게 요구하고 책임자를 책임지게 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저는 우연히, 운이 좋아 살아남았습니다.

우연히 운이 좋아 살아남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누구나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시는 사회적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절망하지 말고 힘을 모아가면 좋겠습니다.

이태원참사로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