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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고양이와 사람

<온다 칼럼> 나현(평등평화세상 온다 회원)

뉴스99 |

 

지난달 28일, 유튜버 ‘새덕후’가 게시한 하나의 영상이 온라인에서 제법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양이만 소중한 전국의 캣맘 대디 동물보호단체분들에게’라는 제목의 영상이다. 새덕후는 야생조류 촬영 유튜버로, 이전부터 고양이가 야생조류 및 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위협을 언급한 바 있다. 이번 영상에서는 해당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며, 문제 해결을 위해 고양이 개체수 관리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상은 많은 지지와 반발을 동시에 받으며 댓글창의 설전, 온라인 기사보도 등으로 이어졌다.

 

영상에 따르면, 현행 고양이 개체 수 관리정책인 TNR(trap-neuter-return, 인도적 방법으로 포획하여 중성화수술 후 포획 장소에 재방사)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예산낭비 정책’이라고 한다. 연중 4회까지도 번식이 가능한 고양이의 빠른 번식속도를 현행 정책으로는 사실상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립공원 내 고양이 안락사 조치를 중단하고 TNR로만 관리할 것을 요구하는 단체 및 시민들의 청원이 있다며, 잘못된 정보와 인식이 정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포획, 살처분, 먹이주기 금지, 국가 및 행정단위 차원의 입양 등 고양이 개체수를 줄이기 위한 해외의 정책 사례를 언급하며, 이제는 길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당부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그동안 길고양이 보호, 돌봄 활동을 진행해 왔던 단체 및 시민들은 이에 반발했다. TNR이 비록 완벽한 방안은 아닐지언정, 영상의 내용만큼 무용하지 않으며 일정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영상 내용의 편중성이 고양이 혐오 및 학대, 보호활동 폄하의 근거로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한다고도 말한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공식 채널을 통해 새덕후의 영상 내용 중 모든 길고양이가 유기묘라는 전제, TNR 무효성의 속단, 고양이 혐오 및 학대 범죄의 논리가 될 수 있는 ‘살처분’의 언급을 지적했다. 또한 제작자가 의도치 않았더라도 해당 영상은 도덕성에 관한 이분법적 대결구도(보호대상으로서의 새 vs 고양이)를 만들고 있으며, 잘못된 정보는 생명존엄성(동물권)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했다.

 

야생에서 고양이의 위치는 상위 포식동물이지만, 그 개체수는 해당 수준을 초과한다. 생태적 위치와 개체수가 일치하지 않는 것부터 이미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다른 포식자들과는 달리, 고양이는 생존수단으로써만 사냥을 하지 않는다. 많은 개체수와 더불어 필요 이상으로 동물을 사냥하는 습성이 고양이가 생태계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는 이유이다. 특히 도심 주변 야생조류의 경우 고양이의 포식은 물론 서식지 파괴와 유리창 충돌까지, 생존에 있어 이중 삼중의 고난을 겪는다.

 

고양이에 관한 문제는 생태적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의 주거지 주변에서 생활하는 고양이의 존재는 우리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밤중에 울음소리를 내거나, 먹이를 찾기 위해 쓰레기봉투를 뒤지거나, 자동차 엔진룸에 들어가 은신하는 등의 행동은 흔히 생활의 불편요소가 된다. 때문에 고양이에게 먹이와 은신처를 제공하는 돌봄 행위를 두고서 인접 주민 간의 갈등이 촉발되기도 한다. 문제의 양상이 사회적 갈등으로 확대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양이가 생태계에 끼치는 악영향은 ‘인위적 요인’으로 분류된다. 즉 고양이의 존재 자체가 인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고양이와 관련한 문제들이 결국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 까닭이다. 영상에서 해외 사례로 언급된 ‘살처분’은 인도적이지 않을뿐더러 무책임한 방식이다. 더욱이 ‘털바퀴’라는 멸칭을 위시한 고양이 혐오가 범죄행위 등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만큼, 그 목적이 문제의 해결이라 해도 생명의 사살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생명 존중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공존의 길을 찾아야만 한다.

 

사회적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번 파장은 단순히 고양이에 대한 개인의 호불호를 확인하는 정도에서 그칠 종류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고양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이들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며, 본능에 충실하게 매일같이 우리에게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그 문제가 생활의 불편이든, 생태계의 교란이든,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든, 관심과 논의가 있어야만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피차 다를 것이 없다. 짧지만 불같았던, 새덕후가 촉발한 이 논쟁을 통해 우리는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과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모적 편 가르기가 아닌 다자의 다각적 접근을 통해, ‘인위적 요인’으로 발생한 문제에 책임을 다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