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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회

<온다 칼럼> 윤태경(평등평화세상 온다 운영위원)

뉴스99 |

 

지난해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의 연장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정부는 안전을 외치는 노동자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엄정 대응만 말하는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업무 개시 명령으로 파업 무력화에 나셨다. 국토부는 윤석열 정부의 강경 대응에 발맞춰 이전의 태도를 180도 바꿔 안전운임제는 실효성이 없다고 말하며 윤석열 정권에 힘을 실어주었다. 보수 언론은 정부와 함게 발맞춰 경제가 망한다는 소리를 하면서 노조 탄압의 정당성을 이야기했다. 노조와의 대립을 통해서 윤석열 정부의 30%대에 있던 지지율이 40%대에 진입했다. 노조에 강경한 대응으로 지지층 응집을 이루어 낸 것이다.

 

강경 대응으로 지지율 상승까지 이루어낸 윤석열 정부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안전운임제를 폐지하고 대신에 화주의 책임을 뺀 표준운임제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결국 화물 노동자는 다시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위협에 시달리게 되었다. 화물노동자와 함께 도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까지도 위태로워졌다.

 

윤석열 정부는 화물노동자의 위험에 내몬 것에 멈추지 않고 수많은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정책을 만들고 있다. 주52시간제를 무력화하는 주 69시간제이다. 정부는 노동 시간의 총량은 변하지 않고 연장근로를 한 만큼 장기휴가가 주어진다고 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 말이다. 유명 유튜브 채널 <너덜트>는 24일 "야근, 야근, 야근, 야근, 야근, 병원, 기절"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보면 주 69시간제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을 더 했지만, 포괄임금제로 수당은 없다.’, '누군가 쉬면 대체 인력이 없다.', '연차도 쓰지 못하고 있다.', '회사에 일이 없는 날이 없다.' 등 너무나 익숙하다.

 

한국 사회가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이 높은 건 이제 새삼 놀라울 일도 아니다. OECD 국가 중 멕시코와 함께 1~2위를 다투던 노동시간이 5위로 내려갔다. 이 순위도 OECD에 2018년 콜롬비아와 2021년 코스타리카가 가입하면서 내려간 순위이다. 물론 우리 사회도 10년 동안 노동시간은 2011년 2,136시간에서 2021년 1,915로 10% 감소했다. 하지만, 2021년 OECD 평균인 1,716시간에 비하면 갈 길은 멀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과로가 만연한 사회인데 과로를 인정하는 비율은 처참하다. 2017년~2021년 7월까지 과로사 신청 건수는 3,043건이다. 신청 건수 중 승인된 건수는 1,205건 39%만 인정받았다. WHO 세계보건기구와 ILO 국제노동기구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16년 한국에서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2,610명이지만, 과로사를 인정받은 건수는 300건이다. 9분의 1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과로하고 있지만, 과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많은 노동자가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현 정부가 안전을 바라보는 시선은 명확하다. 자신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서 시끄럽게 안전을 외치고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는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을 절벽으로 내몬다. 노동자들은 하루에 적게는 몇 시간부터 많으면 하루의 절반 이상을 노동하기 위해 또는 노동하면서 지낸다. 노동을 통해서 노동자들은 삶을 유지할 수 있고 미래를 그려나간다. 삶에서 노동을 뗄 수 없다. 이런 노동이 우리의 삶을 위협한다면, 우리 사회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벌써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9년이 지났다.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안전은 우리에게 어떤 가치인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잠시 뒤로 미룰 수 있는 정도의 가치인가? 안전 사회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안전을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을 우선 가치로 삼고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