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4 (토)

  • 맑음서울 -1.8℃
  • 맑음수원 -2.2℃
기상청 제공

사람

"예술로, 문화로, 당당함으로, 웃음으로 비벼보는 동네 실천가", 김혜영

신지은의 '마을人'

뉴스99 신지은 |

 

김혜영

고잔동 주민자치회장

성악가, 예술교육자, 경기행복교육시민모임 대표

안산시사회적기업협의회 공동대표

(주)아트벨라르떼 대표

 

김혜영은 잘 웃는 사람이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호탕하게 웃기도 하고, 쑥스러움을 작은 웃음으로 표시하기도 했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고, 발달장애 청소년들과 음악으로 만나고, 완경을 주제로 보통의 여성들과 뮤지컬을 만든다. 그리고 그녀는 고잔동 주민자치회 회장이다.

 

주민자치, 지역발전, 주민활성화, 민관협력 등등. 마을 활동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하나하나 깊은 뜻을 지닌 단어지만, ‘자주’들리는 단어는 ‘흔히’로 변하기도 하고, 가끔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김혜영, 안산 고잔동 주민자치회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이유는 그랬다. 예술가, 교육 실천가, 문화기획자인 그녀는 마을 활동을 어떻게 이야기할까, 그녀의 마을 활동에는 어떤 단어가 담길까 궁금했다.

 

예술로, 문화로 한번 비벼 보자

 

 

신지은 : 김혜영의 마을 활동은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모든 마을이 다르고, 달라서 특별하지만, 특히 고잔동은 더 달라 보입니다.

 

김혜영 : 작년이었어요. 완경을 주제로 동네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울고 웃고, 뮤지컬을 만들었어요. ‘경춘기의 반란’이라는 생활문화플랫폼 활동이었습니다. 여성의 생리를 대 놓고 말하니, 많은 사람들이 겸연쩍어 했어요. 우리 아들도 그 중 한 사람이었어요. “엄마 그러지 마세요.”라고 했다니까요. 그래도 하고 싶었어요. 제 이야기니까요. 우울하고 힘들고 속이 갑갑했던 제가 경춘기의 반란을 통해서 변했으니까요. 같이 웃고 떠들고, 행복을 찾는 일이었어요. 공연도 좋았지만, 과정은 정말 감동이었어요. 완경을 통과 중이거나, 완경 전인 여자들 모두 행복해 했어요. 여자들뿐 아니라, 남편과 자식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공연을 본 남편들이 자기 아내를 응원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신지은 : 예술가이자 문화 기획자인 김혜영의 경험이 이웃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네요.

 

김혜영 : 그런가요? 하하하. 경춘기의 반란을 거치고 고잔동에 경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네가 문화예술플랫폼이 되고, 예술로 마을을 만들자는 거지요. 고잔동에 예술가가 많이 살기도 하지만,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제가 동네 사람들에게 그랬어요. 우리 한 번 비벼보자고.

 

 

33년 토박이, 능력있는 음악 선생님, 정면돌파를 두려워하지 않는 주민자치회 회장

 

신지은 : 모든 예술가가, 모든 마을 활동가가 예술로 한 번 비벼보자는 제안을 하기는 어려워 보여요. 예술로 뭔가를 할 생각을 못하기도 하고, 생각을 했더라도 실행할 능력에 자기 의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제안을 가능하게 만든 김혜영 회장님의 삶의 이력이 궁금합니다.

 

김혜영 : 33년 전이었어요. 바로 여기 이 건물에서 음악 학원을 시작했어요.

 

신지은 : 33년 전부터라면, 고잔동 토박이시군요.

 

김혜영 : 그럼요. 33년 전 고잔동의 모습이 어땠는지 다 알고 있지요. 이 자리에서 가르쳤던 제자들이 엄마가 되고, 주민자치회 분들 중에서도 저를 원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

 

신지은 : 능력 있는 선생님이셨을 것 같아요.

 

김혜영 : 학원이 잘 되기는 했지요. 마을 활동을 하게 된 계기도 학원과 관계가 있어요.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느라, 경력이 단절된 제자들을 지원했어요. 안타깝잖아요.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여전히 연주 실력은 으뜸인 아이들이 결혼과 육아로 아무 것도 못하는 게, 대견하기도 하고요. 이 친구들하고 7년 전에 조그만 단체를 만들었어요. 무료 공연으로 시작했어요. 이 친구들이 잘하고 열심히 하니까, 여기저기서 요청이 오고, 누가 사회적 기업을 해 보라고 소개해서, 사회적 기업을 하게 되고, 사회적 기업을 하면서, 마을에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주민자치위원도 되고, 그러다 보니 회장도 되고.

 

신지은 : 주민자치회 회장님도 금방 되셨지요?

 

김혜영 : 맞아요. 맞아. 13기 주민자치위원회 부위원장 겸 회장 직무대행이 되었다가, 주민자치회 회장이 되고.

 

신지은 : 무슨 일이든 한 번 하면 거침없이 바로 바로 잘 하셨지요?

 

김혜영 : 아유. 저도 고민하고 힘들어요. 하지만 정면 돌파를 잘 해요. 동네에서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앞에서는 회의에서는 아무 말 안 하고, 뒤에서 불만을 확산시키는, 그 분들과 바로 대화를 제안해요. 그러시지 마시고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나를 여자로 보지 말고, 마을 사람 김혜영으로 보고 만나자고 해요.

 

신지은 : 정말 대단하세요. 남자건 여자건 그런 당당함을 갖추기는 힘들 것 같아요.

 

김혜영 : 감사합니다! 하하하.

 

세월호

 

신지은 : 모두에게, 특히 안산 사람에게 세월호는 특별한 단어입니다만, 고잔동과 세월호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김혜영 : 솔직히 말할께요. 한동안은 가만히 있고 싶었어요. 저희 아이도 97년 생이에요.

 

김혜영은 고잔동에서 성장한 아들이 2014년 4월 16일 이후 한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아들과 자신이 어떤 언쟁을 하고, 아들이 울면서 자신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담담히 이야기해주었다. 김혜영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아들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김혜영 : 유가족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사람들이 잘 몰라요. 제가 동장님께 제안했어요. 세월호 투어를 하시라고, 유가족들이 모인 자리에 한 말씀을 하시라고.

 

신지은 : 왜 사람들은 잘 모를까요?

 

김혜영 : 힘들고, 조심스럽고 그러니까요. 피하고 싶은 거죠. 그러다 보니 모르고, 모르니까 공감도 못하는 거죠. 그런데 유가족 분들도 비슷해요. 동네 사람을 만나는 데 조심조심하세요. 조심조심 말하고, 조심조심 행동하고 그러세요. 김장을 다 같이 하기로 하고, 유가족 분들게 오시라고 했는데, 이 분들이 뭘 그렇게 사가지고 오시는 거예요. 그러지 마시라고 빈손으로 오시라고 했어요. 이제는 편하게 오시라고.

 

신지은 : 유가족 분들이 회장님을 좋아할 것 같아요.

 

김혜영 : 그럴까요? 하하하.

 

신지은 : 회장님이 동네 토박이라는 점이 유가족 분들에게 더 힘이 되지 않을까요? 2014년 이후 이 곳 고잔동에 많은 사람과 단체들이 찾아왔고, 또 떠나기도 했으니까요.

 

김혜영 : 잘은 모르겠지만, 고잔동 주민들은 그러세요. 그 많던 단체들은 어디갔냐고. 처음에는 저한테도 그랬어요. 당신은 언제 떠날 거냐고. 그런 냉소를 표시했으니까요.

 

신지은 : 제가 고잔동 사람이라면 회장님이 주민자치회 회장 연임을 하면 좋겠군요.

 

김혜영 : 그러지 마세요.

 

고민, 갈등, 겨울, 봄

 

인터뷰 첫 시작,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는 나의 안부 인사에, 김혜영은 의외의 답변을 했다.

 

“아무 것도 안했어요.”

 

‘안산의 아이돌이냐?’는 농담을 나누었을 만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던 그녀였다. 그녀가 왜 아무 것도 안했는지, 아무 것도 하고 싶어 했는지, 짧지 않은 시간 들을 수 있었다. 노동의 강도, 피곤함, 사회적 기업 대표로서 김혜영과 주민자치회 회장으로서 김혜영 사이의 갈등, 돈, 사람 등등. 마을 활동을 하는 이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테다. 누구나 지닌 고민이라고 해서 그 고민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당사자 한 사람에게는 생활과 존재를 위협하는 고민이다.

 

신지은 : 궁금해요. 김혜영이 살아가면서 가슴에 새기는 문장이 무엇인지.

 

김혜영 : 인생의 어떤 일도 필연인 것 같아요. 어려움도 고통스러운 일도 이유가 있으니까 내게 왔다고 생각해요. 마을 일도 그런 걸요.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저에게 왔지요. 그런 면에서 저는 제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잠시 코로나와 관련한 농담 섞인 진담을 함께 나누고 대화를 마쳤다.

그녀는 다시 분주해졌다. 봄이니까. 고잔동에도 봄은 왔고, 이제 곧 여름이 온다.

한 번 비벼보자던 그녀의 제안이 이 여름과 가을, 겨울. 어떻게 비벼질까 궁금하고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