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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일쌤의 99℃> 수수밥 모임

청소년열정공간99℃ 책임교사 김부일

뉴스99  |

 

“얘들아 밥 먹자”

99℃는 밥으로 청소년들의 입을 열고 마음을 건넨다.

콩나물, 버섯, 호박 나물, 달래를 넣은 매콤하고 알싸한 양념장에 뜨거운 밥을 “쓱쓱” 비벼 먹으며 “맛있니?”, “맛있어요.”라는 정다운 말이 오간다. 고기나 햄이 없어도 숟가락이 바쁘게 아이들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즐겁다. 가지랑 당근을 안 먹겠다고 해도 좋다. 대가족처럼 둘러앉아 밥 먹으며 수다를 떨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이 있을까? 그래서 99℃에서 매주 함께하는 수수밥 모임(수요일에 수다 떨며 밥 먹는 모임)을 청소년도 교사도 좋아한다.

 

시작은 라면이었다.

처음 99℃ 공간을 열며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간식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당연하게 ‘라면인가봐’했다. 그래서 99℃에 오는 손님들도 당연하게 라면을 후원했고 청소년들도 열심히 먹었다. 쓰레기봉투에 쌓여가는 라면 봉지나 컵라면 용기를 보며 ‘정말 아이들은 라면을 좋아해.’라고 생각했다. 청소년들이 라면보다 밥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1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김치볶음밥이나 뜨거운 밥에 계란프라이를 얹고 간장과 참기름만 넣어 비벼 먹으며 맛있다는 아이들이 늘어갔다. 점점 라면을 찾지 않게 됐고 어쩌다 한 번씩 끓여 먹게 되니 라면이 쌓여갔다. 그래서 이웃과 나누거나 교사가 사 가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왜 공간에서 밥 먹는 시간을 좋아할까?

몇 년 전 일이다. 학교에서 유명한?(상상에 맡김) 아이들이 공간에 왔다.

청소년이면 누구나 오는 곳이지만 늘 만나던 친구이거나 자신과 비슷한 성향이 아니면 경계하고 불편해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아이들의 불편한 시선을 느꼈을 텐데 한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냉장고 문을 열더니 식재료를 살펴보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 제가 볶음밥 해드릴까요?”

“와~, *원아. 정말 음식 잘하니?”

아이는 엄지를 척 세우며 “제가 음식 좀 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원의 음식은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스팸김밥, 참치마요, 토스트, 수박 과일샐러드, 김치부침개 등 *원이 함께했던 내내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친해졌다. 음식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넘어가기는 어려웠지만 동생들은 *원을 좋아했다.

99℃ 첫 번째 쉐프 *원을 생각하면 저절로 함께 먹었던 음식이 떠오른다.

그 뒤 *원이 비운 자리는 동생들이 지켰다.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는 *현이는 가끔 와서 마파두부, 제육볶음, 깍두기를 담그고 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오랜만에 놀러 온 친구가 삼겹살을 사 와서 구워 먹기도 한다.

 

99℃에서 먹는 밥은 신기한 힘을 갖고 있다.

밥을 먹기 위해 함께 음식을 만들고 밥상을 차리면 어색한 관계라도 밥 먹으라고 말을 건넬 수 있으니 말이다. 지나던 길에 잠깐 들렀다고 해도 밥 먹고 가라고 정답게 붙잡기도 하고,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기도 자연스러운 시간이다. 음식과 이야기가 술술 넘어가는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99℃ 하면 떠오르는 생각이나 가장 좋아하는 활동을 물으면 ‘수수밥모임’이라고 말하는 청소년이 많다.

 

99℃ 청소년들이 ‘수수밥모임’을 좋아하는 이유를 들어보았다.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음식을 함께 만들고 나눠 먹는 일이 특별하기도 하고 먹고 나서 스스로 설거지하면서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동생들이 음식을 만들고 함께 요리하고 먹을 때 참 좋아요.”

다행이다. 청소년들이 서로 잘 몰라도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밥상이 차려지면 한 공간에 있는 사람 누구나 숟가락을 들고 밥 먹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니.

 

수수밥은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다.

우리들의 밥상엔 어울림이 있고 이야기가 있으니 더욱 수수하다. 아이들에겐 화려한 밥상보다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고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수수하고 정다운 시간이 더욱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