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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일쌤의 99℃> “함께 겪은 일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요!”

청소년열정공간99℃ 책임교사 김부일

뉴스99 |

 

10년 전 일이다.

“언제 끝나요?”

동아리 모임 첫 만남부터 꺼낸 이야기가 “언제 끝나요?” 라니.

말을 듣자마자 맥이 풀렸다. 11명의 청소년이 모였는데 모두 한마음으로 언제 끝나냐는 듯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청소년들 마음도 이해가 간다. 전날 금요일이었으니 맘껏 즐기고 늦잠을 자고 싶었을 텐데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모여야 한다니 얼마나 싫었겠는가. 귀찮은 마음은 표정과 행동으로 그대로 드러났다. 대부분 후드티 모자를 쓰고 고개를 푹 숙이고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 어서 끝나기를 기다리는 이 친구들과 어떻게 수업해야 할까? 진땀이 났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2012년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알찬 교육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어떻게 사용할까?’를 주제로 토론을 하고 글을 썼다. 필요한 교육이었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지루한 수업이었을 것이다. 질문하면 대답도 잘 안 하고, 장난치고 언제 수업이 끝나냐며 친구랑 게임하기로 했으니 일찍 끝내 달라, ‘엄마가 하라고 해서 억지로 왔다’며 툴툴댄다. 그럼 난 분위기를 바꿔보려다 결국 화를 냈다. 그때 나의 모습을 기억하는 한 청년이 “선생님 이제 화를 안 내시네요” 할 정도니 나도 청소년들과 성장통을 함께 겪으며 달라지지 않았을까.

 

동아리 수업을 하기 전이나 하고 나서 잠이 오지 않았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중요한 시간인데 잘 보낼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때부터 서울 탐방, 농활, 부엉이캠프, 평화통일 걷기 대회, 역사 기행, 산타 활동을 계획하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로 종교 탐방에 가서는 이슬람 사원, 조계사에서 심하게 떠들어 눈총을 받기도 하고, 명동 성당에서는 성수를 얼굴에 바르며 장난을 쳐 당황하게 만들었던 일도 있었다. 정말 어딘가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뿐인가. 아침 일찍 기행이나 농활을 가는 날 30분 이상 늦는 청소년이 있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모내기하다 두 명의 청소년이 사라져서 찾아보니 축구를 하며 놀고 있던 일, 자기 게임 약속 있다며 집에 가야 하니 회비를 돌려달라는 녀석과 길거리에서 말씨름하던 일, 가기 싫은데 아빠한테 혼나고 기행에 온 아이는 버스에서 내내 울다가 도착해서 사진 찍을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브이를 하며 해맑게 웃어 기막혔던 일, 기회만 되면 친구와 주먹다짐하며 싸우려 드는 청소년을 말리다 한 대 맞을 뻔한 일까지. 어떻게 우리가 보낸 시간을 다 말할 수 있을까? 다행히 불평하고 갈등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날이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도움이 필요한 마을 어르신 댁에 청소년들과 선물을 배달하는 날이었다. 평소에 말썽을 부려 고민거리였던 친구가 생각지 못한 말을 툭 꺼낸다.

“부일쌤 기분이 이상해요. 어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아무튼 이제 쌤 말 잘 들을게요.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요.”

 

아이의 마음을 움직인 힘은 무엇이었을까? 나중에 들어보니 어르신들이 계신 집을 방문할 때마다 고맙다, 너희는 어디 사는 아이들이길래 이렇게 착하니? 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고 그때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데 마음에 어떤 파동이 느껴졌다고. 그리고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고 친구들과 함께해서 좋았다고 했다.

 

함께 착한 일을 해서일까. 이후 1기 동아리 아이들은 서로 친하게 지냈고 마을 축제 봉사, 사회참여 활동, 청소년 산타 활동, 99℃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선배 노릇을 톡톡히 했다. 마치 “이런 선배 없었습니다”를 확인시켜 주듯 고3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1기 동아리 친구들은 이제 청년이 되었다.

신기한 건 힘들었던 일, 귀찮게 했던 친구도 선생님이 혼냈던 일도 이젠 한 편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된다. 만날 때마다 이야기하고 또 한다. 똑같은 이야기인데 웃느라 정신이 없는 청년들을 보며 함께 경험한 일은 시간이 지나면 좋은 기억으로만 남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며칠 전 99℃선후배 반짝 만남이 있었다.

청년 선배가 이야기를 들려준다니 동생들의 눈이 반짝이고 귀가 쫑긋한다.

두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 속에는 농활, 책 토론, 사회참여, 청소년 산타, 부엉이캠프를 하며 겪은 일이 담겨있었다. 동생들의 관심을 끈 이야기는 농활 가서 먹은 삼겹살이 맛있었다는 것, 함께 여행가고 부엉이캠프 했던 경험이었다.

 

“99℃에서 친구들과 언니, 오빠들과 함께한 일이 점점 소중하게 느껴져요. 그 과정에서 저도 많이 달라졌어요. 낯가림이 있었는데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할 때는 열심히 참여자도 모으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발표도 하게 됐으니 많이 성장했죠. 친구들도 함께 어울리며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정말 말 안 들었어요. 친구들은 잘 집중하는 거예요. 사진을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봤는데 동아리 활동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본 것 같아요. 여러분도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유튜브 영상이 재미는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나는 것이 없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겪은 일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요.

청년이 되고 나서 99℃에서 경험한 일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친구들도 99℃에서 하는 활동을 잘 참여하면 좋겠어요.”

 

동아리 활동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낸 선배들의 이야기가 좋았는지 소감 글에 자신들도 99℃동아리 활동을 잘 참여하고 좋아하는 일도 찾겠다고 남겼다. 그러나 마음먹은 일이 꼭 현실로 이어지는 건 아닌가 보다. 청소년들과 동아리 모임이 끝나고 맛있게 냉면을 먹고 안산시민 평화통일 걷기대회에 참여했는데 불만이 쏟아진다. 너무 더워요. 집에 가고 싶어요. 저는 사람 많은 곳은 정말 싫어해요. 내년에는 안 올 거예요. 귀가 따갑게 말하는 아이들. 그래도 끝까지 걸었고, 경품 추첨할 때는 귀를 쫑끗 세워 보고 단체 표현상을 받을 때는 함께 기뻐했다.

 

청소년들은 선배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맞다 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막상 더운 여름에 아스팔트 위를 걸으려니 힘들었을 것이다. 당연히 힘든 일이고 그래서 특별한 경험이고 오랫동안 잊지 못할 기억이 되지 않았을까.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함께했던 사람들과 기억할 이야기가 생기니 말이다.

 

앞으로도 청소년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매력적인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교사가 할 일은 분명해진다. 청소년들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하고 불평이 들려도 멈추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