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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일쌤의 99℃> 어른이 함께라면

청소년열정공간99℃ 책임교사 김부일

뉴스99 |

 

금사빠 아빠들 덕분에 99℃ 간판이 올려지고 불이 켜졌다.

간판 색깔은 노란색. 99℃ 공간 안에 있는 노란색 벽화와 색깔이 같아서 더 안성맞춤이다.

아빠들은 한여름에 사다리를 타고 간판을 올리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99℃ 공간 곳곳에 아빠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있을까? 나무 책상, 수납장, 조명, 데코 등 아빠들이 만들어낸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멈췄지만 해마다 청소년들과 산타 활동을 하고 주말에 배드민턴을 치기도 했다. 아빠들은 모여서 일하거나 운동할 때 끝없이 이야기하며 웃는다. 분위기가 유쾌하고 즐거워서 함께하는 청년들도 좋아한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좋은 어른이 있었다.

자전거 타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일하느라 지친 아빠에게 부탁하기 어려웠다. 집에 있던 짐 자전거를 낑낑대며 들고나와 어정쩡하게 타는 모습을 본 옆집 짱구 아저씨가 다가왔다. “부일아 자전거 타려고 해? 아직 혼자 타기 힘들겠다. 아저씨가 가르쳐 줄까?.”

 

자전거를 잡아주며 정말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아저씨는 내가 혼자 탈 수 있겠다고 판단해서 뒷자리를 잡고 있던 손을 살며시 놓았다. 아저씨만 믿고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있다가 “아아악” 개울가로 떨어질 뻔했다. 그때 아저씨가 쏜살같이 와서 잡아준 덕에 다치지 않았다. 크게 다칠 뻔했는데 힘껏 달려와 자전거를 잡아줬던 아저씨가 고마웠다. 속으로 ‘어른은 자기가 다칠 수 있어도 아이를 지켜줘야 하는 거구나’ 생각하며 짱구 아저씨가 좋은 어른이라고 믿게 됐다. ‘어른이라면 이래야 하는구나’를 알려준 분이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몇 명의 어른들이 더 있다. 천둥 번개가 치던 밤 옆집에서 누군가 “우당 탕탕”하며 “죽고 싶어 살고 싶어”라는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서 무서움을 참고 당시 집마다 설치해 둔 비상벨을 눌렀다. 새벽 3시쯤이었는데 연락을 받은 동네 아저씨들이 웅성웅성 모여들었고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이 놓여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학교 다녀오는 길 골목 입구에서 만난 이웃 어른들이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씩 한다. 부일이 덕분에 우리 골목은 든든하네, 도둑이 무서워 못 오겠다는 말이 이어진다. 왠지 놀리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죽고 싶어 살고 싶어” 주인공은 옆집 오빠였고 쥐를 잡으며 소란을 피운 거라고, 했다. 옆집 오빠는 어릴 때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서 6살 아이처럼 행동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이 일로 나는 한동안 골목 이웃 어른들의 관심을 받았다. 어른들은 새벽잠을 설쳤지만, 이웃이 위험에 처한 줄 알고 비상벨을 누른 용감한 청소년을 대견하게 생각했다. 그때는 창피해서 어른들을 피해 다녔지만 지금 생각하면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다. 당시 어른들은 물질적으로 넉넉하진 않았지만,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엉뚱한 청소년이 일으킨 사소한 일에 자기 시간을 쏟아도 웃어넘길 줄 알았다. 자기 삶과 타인의 삶을 경계 없이 넘나들며 참견하고 도와주었던 시절. 그래서 귀찮았고 피해서 다니고 싶었는데 가끔 그때 어른들이 그립고, 보고 싶다.

 

 

내 아이가 아니어도 자전거를 가르쳐주고 혼자 있으면 밥을 챙겨 먹이고 예쁜 방울끈을 사 와서 머리를 묶어주던 마음이 따뜻한 토끼 이모, 모두 잠든 새벽, 동네 청소년이 옆집에 도둑이 들었다며 비상벨을 누르자 아저씨들이 모여 일을 해결해 주던 일은 나만의 이야기가 되어 기억의 무늬를 만들었다. 서로 연결된 무늬다.

 

어린 시절 내가 경험한 공동체는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계획을 세워서 한 일이 아니다. 마을 어른들 누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아이들에게 조금씩 품을 내어준 것뿐이다.

 

놀러 간 집에 밥상이 차려지면 함께 밥을 먹었고 부모가 챙기지 못하면 이웃이 아이를 챙겼다. 특별하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어울리며 지내는 것이 삶이었다. 이웃과 어울리며 지내는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은 여전히 소중하게 다가온다.

 

 

지역과 마을 어른이 함께해서 지켜지는 청소년 공간이 99℃다.

이 공간에서 청소년들이 쉬고 놀고 배우며 지내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후원으로 5년을 버텨오고 있다.

바쁜 삶을 사는 어른들이 청소년을 위해 시간을 내고 후원금을 지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후원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청소년들을 생각하는 어른들의 마음은 비슷하다 뭐라도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청소년들에게 닿아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자신들도 어린 시절에 동네 이모, 삼촌들 덕에 잘 자랄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어른이 함께하는 것이 가진 힘을 알고 있다고 했다.

 

어른이라면 뭐라도 아이들을 위해 한 가지씩 잘해보면 어떨까?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 아이들에게 정답게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더운 여름 길에서 만나면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도 하고 다양한 생활의 기술(음식, 공구 사용, 화분 관리, 정리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것도 좋겠다.

 

 

99℃ 청소년, 청년들은 또래와 어울리기 좋아하고 어른들과 지내는 것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곁에 있는 어른들이 자신들을 예뻐하고 도움을 주려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희를 좋아해”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90여 명의 개미후원단 어른들이 99를 응원한다는 것, 가끔 간식을 사 오거나 99 공간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주는 아빠들, 다양한 재능을 지닌 어른들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니 말이다.

 

청소년이 지역과 마을 어른들의 관심과 격려를 받고 자라는 것은 큰 힘이다. 그 힘이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스며들지 모르지만 어른이 되어서 가끔 동네 어른들과 지냈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할 것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지금 우리처럼 새로운 시대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어른들이 청소년과 함께하면 좋은 일이 이어지고 연결되고 넓게 퍼진다고 믿으면 가능한 일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애쓴다면 희망은 있다.

사랑은 힘이 세다.